Kasa MVP
2019년 3월, 저는 Kasa라는 10명 남짓한 스타트업에 합류했습니다. 제품은 없었지만, 비즈니스 아이템과 비전이 명확한 상태였어요. 누구나 강남 건물주를 꿈꾸지만, 몇십, 몇백억을 호가하는 강남의 빌딩을 구매하기란 하늘에 별 따기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에요. 카사는 개인이 구매하기 어려운 오피스 빌딩을 분할하여, 모두가 쉽고 안전하게 빌딩에 투자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어떻게요? 신탁회사를 통해 안전하게 처분신탁된 오피스 빌딩을 담보로 **디지털 자산유동화증권(DABS, Digital Asset Backed Securities)**을 발행하고, 이를 주식처럼 소액으로 거래할 수 있게 만드는 거예요.
약 10개월간 저는 Product Designer로서 이 비전을 현실로 만드는 여정에 함께했습니다.
[이미지 제안: 카사 브랜드 블루 컬러를 활용한 히어로 이미지]
"호기심 많은 도전형 투자자"를 찾아서
제품이 없는 상황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명확했습니다. 우리의 고객이 누구인지 정의하는 것이었죠.
부동산 조각투자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했기 때문에, 시장성에 대한 불확실성이 컸어요. 이를 해소하고자 다양한 연령대의 투자자를 만나 의견을 수집했습니다. 그리고 비즈니스에 우호적인 투자자들의 공통점을 찾아 카사의 초기 사용자를 정의했어요.
혁신 확산 이론으로 바라본 우리의 타겟
사용자 인터뷰 결과를 혁신 확산 이론(Diffusion of Innovations)의 프레임으로 분석했습니다. 우리가 타겟으로 삼은 사용자는 Early Adopters(우호적 응답 상위 13.5%)였어요.
이들의 특징은 이랬습니다:
"호기심 많은 도전형 투자자"
- 자산증식기에 있는 30-40대 남성
- 3년 이상의 투자 경험 보유
- 투자성향은 위험중립형 이상
- 능동적으로 투자정보를 탐색
- 100% 주식 투자 경험 보유
- MTS(모바일 트레이딩 시스템)를 가장 많이 사용
마지막 두 가지가 특히 중요했어요. 우리의 초기 사용자들은 이미 주식 투자를 하고 있었고, 모바일로 거래하는 데 익숙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는 곧 우리가 만들어야 할 제품의 방향을 명확하게 해주었죠.
[이미지 제안: 혁신 확산 곡선과 타겟 사용자 위치를 표시한 다이어그램]
사용자들이 실제로 겪는 문제들
초기 사용자 인터뷰를 통해 실제 투자에서 겪는 문제와 요구사항을 수집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비즈니스 측면의 문제와 사용자 경험의 문제로 구분하여 우선순위를 매겼어요.
비즈니스 측면의 문제
투자자들은 기존 투자 상품에 대해 이런 불만을 가지고 있었어요:
- "예적금같은 안정성을 원하지만 금리가 너무 낮고, 환금성이 떨어져요"
- "건물주처럼 정기적인 수익을 원하지만 자본금이 부족해요"
부동산 투자는 안정적이지만 진입장벽이 높고, 예적금은 안전하지만 수익률이 낮죠. 카사는 이 두 가지의 장점을 결합한 새로운 투자 상품을 제안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용자 경험 측면의 문제
더 흥미로웠던 건 사용자들이 기존 투자 서비스를 사용하면서 겪는 불편함이었어요:
진입 단계의 문제:
- "인증을 위해 모바일 디바이스로 공동인증서를 가져오는 과정이 번거로워요"
- "비밀번호 종류가 다양해 혼란스럽고 매번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해서 번거로워요"
탐색 단계의 문제:
- "내가 원하는 기능에 즉시 진입하기가 복잡하고 어려워요"
- "부동산 투자는 외부에서 직접 학습해야 하는 것들이 너무 많고 어렵게 느껴져요"
투자 단계의 문제:
- "투자에 대한 피드백이나 결과를 직접 탐색해야 해요"
- "내 투자 상태를 파악하기 어렵고 거래 체결이 되었는지 확인하기 번거로워요"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투자 여정을 진입 → 탐색 → 분석 → 투자 → 점검의 5단계로 나누고, 각 단계별로 목표를 설정했습니다.
[이미지 제안: 5단계 투자 여정 플로우차트]
핵심 경험을 정의하다
각 단계별로 Must Have, Should Have, Nice to Have를 구분하여 우선순위를 정했습니다. MVP를 만들 때는 특히 이런 우선순위 설정이 중요해요. 한정된 리소스로 가장 중요한 가치를 전달해야 하니까요.
진입: 공동인증서 없는 간편한 인증 (Must Have)
당시 대부분의 금융 서비스가 공동인증서를 요구했지만, 저희는 과감하게 **생체 보안수단(Face ID, 지문인식)**을 통한 인증을 Must Have로 정의했습니다.
왜냐고요? 공동인증서를 모바일로 가져오는 과정은 사용자에게 너무 큰 진입 장벽이었거든요. PC에서 인증서를 내보내고, 모바일에서 가져오고... 이 과정에서 많은 사용자들이 포기하곤 했어요.
대신 생체 인증을 사용하면 어떨까요? 지문만 대면, 얼굴만 보면 바로 로그인할 수 있어요. 주식 앱처럼 말이죠. 우리의 타겟 사용자들이 이미 익숙한 경험이었습니다.
탐색: 깊게 들어가지 않는 간단한 내비게이션 (Must Have)
복잡한 메뉴 구조 대신, **최대한 얕은 정보 구조(Information Architecture)**를 설계했습니다.
목표는 명확했어요: 사용자가 3번 이상 탭하지 않고도 원하는 기능에 도달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 홈 → 빌딩 선택 → 거래, 이렇게 간단하게요.
또한 사용자가 직접 탐색할 필요 없이 적시에 필요한 기능을 제안하는 것도 중요했습니다. 예를 들어, 투자하지 않은 사용자에게는 "첫 투자 시작하기"를 제안하고, 이미 투자한 사용자에게는 "배당금 확인하기"를 제안하는 식이죠.
분석: 모든 정보를 서비스 안에서 (Must Have)
부동산 투자 정보가 외부에 분산되어 있다는 게 사용자들의 큰 불만이었어요. 빌딩 정보는 부동산 포털에서, 임차인 정보는 따로 검색해서, 수익률 계산은 또 계산기 두드려서...
저희는 투자를 위해 필요한 정보들을 모두 서비스 안에서 제공하기로 했습니다:
- 빌딩의 위치, 연면적, 준공연도 등 기본 정보
- 주요 임차인 정보와 임대차 계약 현황
- 예상 수익률과 배당금 계산
- 과거 거래 내역과 시세 변동
이런 정보들을 한곳에 모아 보여주면, 사용자는 카사 앱만으로도 충분히 투자 결정을 내릴 수 있게 됩니다.
투자: 번거로운 입력과 인증을 최소화 (Must Have)
주식 거래처럼 빠르게 매수/매도할 수 있도록, 번거로운 입력 과정과 인증 과정을 최소화했습니다.
기존 금융 서비스들의 투자 플로우를 분석해보니, 매번 비밀번호를 입력하거나, 추가 인증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하지만 생각해보세요. 이미 앱에 로그인할 때 생체 인증을 했는데, 투자할 때 또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한다면? 엄청 번거롭겠죠.
저희는 생체 인증 한 번으로 투자까지 완료할 수 있도록 플로우를 단순화했습니다.
또한 새로운 빌딩 공모 및 상장 시 알림을 제공하는 것도 Must Have로 정의했어요. 투자자들은 새로운 투자 기회를 놓치고 싶어 하지 않으니까요.
점검: 투자 상태를 한눈에 (Nice to Have)
사용자의 투자 상태에 따라 다음 행동을 유도하는 것은 Nice to Have로 분류했어요. 예를 들어:
- 거래 체결 알림
- 미체결 시 장 종료 10분 전 알림
- 배당금 입금 알림
이런 기능들은 있으면 좋지만, MVP에 필수적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우선 핵심 투자 플로우를 완성하는 게 더 중요했거든요.
[이미지 제안: Must Have / Should Have / Nice to Have로 구분된 우선순위 표]
프로토타이핑: 가설을 검증하다
수립한 가설을 실험하고 검증할 수 있는 최소 기능 제품의 프로토타입을 설계했어요.
핵심 사용자들이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가장 편하게 접근하여 사용할 수 있는 플랫폼은 무엇일까요? 바로 모바일이었습니다. 우리의 타겟 사용자들은 이미 MTS로 주식 투자를 하고 있었으니까요.
생체 인증으로 시작하는 간편한 진입
프로토타입의 첫 화면은 생체 인증 화면이었어요. 공동인증서 같은 복잡한 과정 없이, 지문이나 얼굴 인식만으로 바로 시작할 수 있게 만들었죠.
[이미지 제안: 생체 인증 화면 스크린샷]
한눈에 보이는 내 투자 현황
홈 화면에서는 사용자의 총 투자금액, 평가금액, 수익률을 한눈에 볼 수 있게 했어요. 주식 앱의 포트폴리오 화면과 비슷한 구조였죠.
그리고 공모 중인 빌딩을 카드 형태로 보여주었습니다. 각 카드에는 빌딩 이미지, 이름, 예상 수익률, 공모 마감일 등 핵심 정보만 담았어요.
[이미지 제안: 홈 화면 스크린샷, 투자 현황과 빌딩 카드들]
빌딩 정보와 거래를 한 화면에
빌딩 정보 페이지에서는 탭을 이용해 정보, 호가, 시세를 전환할 수 있게 만들었어요. 사용자가 빌딩에 대해 알고 싶은 모든 정보를 한 곳에서 볼 수 있도록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거래 기능. 매수/매도 버튼은 항상 화면 하단에 고정되어 있어서, 언제든지 바로 거래할 수 있었습니다.
[이미지 제안: 빌딩 정보 페이지 스크린샷]
주식처럼 거래하는 호가창
거래 화면은 주식 앱의 호가창과 유사하게 디자인했어요. 우리의 타겟 사용자들이 이미 익숙한 인터페이스니까요.
매수/매도 호가를 한눈에 비교할 수 있고, 원하는 가격과 수량을 입력하면 바로 주문할 수 있었습니다. 생체 인증 한 번으로 주문 완료!
[이미지 제안: 거래 화면 스크린샷, 호가창과 주문 입력 필드]
2020년 9월, 대한민국 최초의 DABS 거래소
약 10개월간의 여정 끝에, 2020년 9월, 카사는 대한민국 최초의 디지털 자산유동화증권(DABS) 거래소를 런칭했습니다.
0에서 1을 만들며 배운 것
1. 사용자를 정의하는 것이 전부의 시작이다
"모든 사람을 위한 제품"은 결국 "아무도 위한 제품이 아니다"가 됩니다. 카사의 성공은 초기에 **"호기심 많은 도전형 투자자"**라는 명확한 타겟을 정의한 데서 시작되었어요.
이들이 누구인지, 어떤 경험을 해봤는지,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았기 때문에, MTS와 유사한 인터페이스, 생체 인증, 간단한 투자 플로우 같은 결정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2. 우선순위는 팀의 리소스를 결정한다
Must Have, Should Have, Nice to Have를 구분하는 게 단순히 기능의 중요도를 나누는 것처럼 보일 수 있어요. 하지만 실제로는 팀의 시간과 에너지를 어디에 쓸지를 결정하는 거예요.
만약 모든 기능을 Must Have로 정의했다면? 10개월이 아니라 2년이 걸렸을지도 몰라요. 핵심 가치에 집중했기 때문에, 빠르게 런칭하고 시장의 반응을 볼 수 있었습니다.
3. 익숙함은 강력한 무기다
새로운 개념(DABS)을 소개하면서도, **익숙한 경험(MTS)**을 제공한 것이 카사의 강점이었어요. 사용자들은 새로운 투자 상품에 도전하면서도, 익숙한 방식으로 거래할 수 있었죠.
혁신은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드는 게 아니라, 핵심 가치는 새롭되 경험은 익숙하게 만드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4. MVP는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
MVP의 핵심은 "최소(Minimum)"에 있어요. 완벽한 제품을 만들려고 하면 영원히 출시할 수 없습니다. 대신 핵심 가치를 전달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제품을 빠르게 만들고, 사용자의 피드백을 받는 게 중요해요.
카사의 첫 버전도 완벽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습니다. 실제 사용자들과 함께 제품을 발전시켜 나가는 것, 그것이 진짜 MVP의 의미였으니까요.